상하이 임시정부의 내무차장·외무차장·국무원비서장·법무총장·외무총장·문교부장 등을 지냈으며, 1948년 제헌국회의원에 당선되어 부의장이 되었다가 같은 해 8월 의장 이승만이 대통령이 되자 의장으로 피선되었다. 1950년 제2대 민의원과 국회의장을 지냈다. 1908년 한성외국어학교에서 영어를 배우고, 1910년 일본에 건너가 와세다대학 정경학부에 입학했다. 1918년말부터 최린·송진우 등과 독립운동의 방향을 논의했으며, 3·1운동 당시에는 해외와의 연락 임무를 맡았다. 1956년 민주당 공천으로 대통령에 입후보, 자유당의 이승만과 맞서 유세하러 가던 도중 열차 안에서 뇌일혈로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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