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9년 10월 18일(음력) 전북 임실군(任實郡) 남면(南面) 국평리(菊坪里) 호전동(狐田洞)에서 부친 서일(瑞一)과 경주김씨(慶州金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천안(天安)이며 원래 이름은 기홍(基泓), 아명은 종엽(鍾葉), 자는 수용(垂鏞)이다. 해산(海山)은 스스로 지은 호인데, 바다와 산을 누비는 의병장이 되겠다는 포부가 담겨 있다. 을사늑약이 강제로 체결되어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될 위기에 처하자, 1906년 6월 전북 태인(泰仁)의 무성서원(武城書院)에서 최익현과 임병찬(林炳瓚)의 주도로 강회를 마친 후 의병을 일으킬 때 참여하였다. 하지만 군사활동에 취약한 유생군(儒生軍)들이 대다수여서 순창(淳昌)에서 패배한 후 최익현과 이른바 ‘순창12의사’들은 서울로 압송되고 의병부대는 해산되었다. 그렇지만 70대 노구(老軀)의 몸으로 의병을 일으킨 최익현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후 전북의 의열지사(義烈志士)로 알려진 임실 출신의 정재(靜齋) 이석용(李錫庸)이 1907년 9월(음력) 진안 마이산(馬耳山)에서 의병을 일으켜 호남창의소(湖南倡義所)를 결성하였다. 이 소식을 접하자, 1908년 1월(음력) 전북 남원(南原)에 주둔 중인 이석용을 만나 그 의병부대에 투신하여 참모[參謀, 혹은 종사(從事)]로 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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